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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 사무실 이전

12[2022] 2022. 12. 28. 17:38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공부방이기도 한 하품의 사무실이 이전했다. 예호는 여전히 처음 사무실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놀이터 앞이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고, 루호는 입바른 말인지 새로 이사한 사무실이 너무 좋다 말해준다. 처음 사무실에 들어갈 땐 아무것도 없는 방에 책상과 책장만 채워 넣었었고, 첫 이사때는 용달트럭 한 대로 이사를 했는데 이제 대형 트럭 한 대로도 모자라 작은 트럭을 한 대 더불러야 할 정도록 살림이 많아졌다. 호호형제에게 또 추억이 한트럭 만큼 쌓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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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발레 수업들

12[2022] 2022. 12. 28. 17:30

여름동안 루호가 만나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 얼마나 유명하지도 모르고, 본 공연들도 나에겐 별 감흥이 없지만 가격으로 환산해 보거나 가격으로 얻을 수 없는 기회라는 얘기들을 듣고 있자니 루호에게 큰 축복임을 감사하게 된다. 

 

*나중에 루호가 여름방학동안 한 일을 적어내려간 리스트들을 학교 숙제로 낸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 리스트를 보니 굉장히 유복한 집 자제분의 방학생활 같은 느낌이었다. **발레라노 특강, **공연 관람 같은 목록들은 지난 다음에 보니 더 신기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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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

12[2022] 2022. 9. 27. 14:11

일곱시에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여덟시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아홉시에는 대로에 계곡처럼 물이 흐를 정도가 되었다. 
아마도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비가 내린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비가 이렇게도 많이 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쏟아 붓는데 이상하게도 그 상태에서 전혀 비가 잦아들지 않았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어도 어릴 적에 물난리를 겪은 기억 때문인지 조금씩 불안해하고 지하 발레홀에서 연습 중인 루호를 데려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전화가 왔다. 발레홀에 물이 차고 있다고.

이수역 사거리에 가기도 전에 차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반대편 차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 이상한 풍경에 직감적으로 차를 돌렸다. 땅보다 낮은 곳은 물론이고 분명 땅보다 높은 곳인데도 물이 들이닥쳐 어쩔줄 몰라하는 사람들, 갈 때는 수건이며 쌓을 수 있는 것으로 물을 막았지만 돌아갈 땐 물이 차버린 체육센터, 집 앞 삼거리에 맨홀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 길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가까스로 지나간 길은 마치 강처럼 물이 흘렀다. 동네라서 나름대로 그나마 지나갈 수 있는 길들로만 돌아 중간에 루호와 지은이를 만나 태우고 돌아오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제 발레홀은 어찌하나 전화를 해보고 걱정을 해보지만 갈 수도 없고 이대로는 어디라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물이 찬 발레홀에서 돌아온 루호는 기도를 하다가 대성통곡을 했다. 발레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울음을 멈출 줄 몰랐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는데 길에는 버려둔 차들과 흙과 쓰레기들로 엉망이었지만 다니는 차가 없어서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한시간만에 물이 차오르고 난리가 났던 곳이 불과 또 금방 물이 빠진 걸 보니 참 허망하다. 발레홀에는 더 허망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다 젖어버린 물건들을 씻고 계셨다. 걸레받이의 실리콘 사이로 계속 물이 나왔다. 여기 가득 들어찼던 물이 아직 아래 남아 흐르는 것이다. 나무로 된 발레홀 바닥은 이제 어쩌나? 이게 몇 시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인데 참으로 허망하다. 계속 나오는 물을 퍼다 버려도 참, 허망하다. 

며칠동안 버려진 차들이 곳곳에 그대로 놓여 있었고 물에 젖은 물건들이 길가에 나와 있기도 했지만 세상은 언뜻 전과 다름 없어 보였고 발레홀도 어찌어찌 다시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로 루호의 마음은 조금 더 간절해졌을까? 울며 기도한 응답이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물난리처럼 또 기도해야할 일들 앞에서 늘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 요즘 유행하는 스티커사진을 찍어보았다. 루호가 늘 찍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기분을 내 본 것이다. 함께 모여 웃어본다. 허망한 일들 가운데 우리의 웃음이 서로를 다시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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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모저모

12[2022] 2022. 9. 26. 15:51

아이들이 한 계절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고, 특히 여름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늘 일상은 눅록치 않고 이번 여름도 그렇다. 
그런 와중에도 물을 즐길 수 있고 또래들을 만나 노는 시간이 그래도 좋은 여름이었다고 기억하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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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레저 맛보기

12[2022] 2022. 9. 22. 13:39

코로나 이후로 처음 잡힌 친구들 모임에 하필 예호 성경학교가 겹쳐서 루호 둘이서만 몰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가평 수상레저 리조트에 예약을 했다고 해서 갔더니 가족 단위는 우리들 뿐이고 다들 물놀이 하러 온 젊은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은 그렇게 나이 듦을 느끼며 울적해했다. 
루호가 조금 심심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가는 루호가 내내 마블 이야기며 자동차 이야기를 쉴새 없이 해줘서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도착했고,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수상 놀이기구를 타고 싶다며 신나해서 다행이었다. 
형들과 친구들과 물총싸움도 하고  물위에 둥둥 뜬 유격훈련을 생각나게 하는 놀이기구도 오르락내리락했다. 
놀이기구는 한 바퀴 돌고 오니 온 몸에 알이 베겨서 더는 탈 수 없었고,
바비큐로 저녁을 먹고 아쉬움을 잔뜩 남긴채 주일을 위해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나는 가는 길에도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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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콩쿨

12[2022] 2022. 9. 22. 13:27

루호가 콩쿨을 나간다는 것이 가족에게 영광이고 보람이다. 
콩쿨을 나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난관을 지난 스테이지 클리어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작품, 의상, 연습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루호에게 찾아왔는가?
그래서 아직은 성적에 그다지 연연할 욕심까지는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엄마에 말에 의하면 공연 전에 큰 실수도 있었다는데 루호가 자신은 만족한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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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당 나들이

12[2022] 2022. 9. 22. 13:16

루호는 영철 선생님과 호연 선생님 공연을 보기 위해, 예호는 그 시간동안 즐겁게 놀기 위해 예술의전당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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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강원도

12[2022] 2022. 8. 8. 12:29

최근에 촬영과 공연사전방문 등으로 혼자 혹은 가족과 떨어져서 강원도를 다녀오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좋으면서도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한 남자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하고 나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나는 강박적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집착하는 것 같다. 쉬어도 눈 앞에 가족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이번 출장은 하루 먼저 가족과 와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여행을 충분히 즐길 시간이 없으면 가성비를 따지며 더 여유있는 날로 여행을 미루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것들은 따지지 않고 아이들 수업을 마치는대로 출발해서 같이 저녁시간이나 보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떠나왔다. 다행히 다음날 일하는 가까운 곳에 새로 생겨서 아직은 저렴한 캠핑 트레일러를 찾아 묵었다. 강원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저녁을 먹고 치즈를 사와서 불멍을 하며 구워 먹고, 영화를 보다 잠이 드는 짧고 별 것 없는 일정이었다. 출장비가 어디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돈 써가면서 겨우 저녁시간을 보내는 것이 누가 보면 지나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의 요즘은, 아니 나의 요즘은 반나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연약함 가운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호호형제는 예상하지 못한 여행이 즐거울 것이고 나는 그런 표정들을 보며 또 연약함에서 벗어나는 것이겠지. 

밤새 비가 많이 왔거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근처 당림초에서 아침부터 사작된 국악공연과 디자인수업은 잘 마쳤고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었다. 일을 마친 지은이모, 미사이모, 수현이모와 함께 닭갈비도 먹고 카페에서 디저트도 먹는 동안 충분히 많이 내리던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졌다. 하지만 이모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호호형제가 거의 타본 적이 없는 (예호는 처음) 기차를 함께 타 주었고 덕분에 엄마 아빠도 돌아가는 길에 오붓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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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 10주년

12[2022] 2022. 8. 4. 19:20

여기 있는 아이들이 세상에 한 명도 없었을 때부터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아이들로 정신 없는 걸 보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싶다. 
모여서 뭐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좌충우돌 하던 그 시절도 이젠 추억이다. 
휠체어 타고 눈 가리고 주위에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던 어린 날부터 시작해서 책도 내고 방송 출연도 하고 나름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이제는 자기 가족 건사하기도 힘겨워 보인다. 태훈이는 베트남에 있고 우리도 겨우겨우 모여 십주년이란 타이틀로 사진 한 장 남길 뿐이다. 

예호가 뱃속에 있을 때 루호도 함께 휠체어 지도 그린다고 여기저기 쏘다니고 휠체어 체험도 했던는데 나중에 기억을 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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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는 중학생이지만 우리나라의 중학생들과는 많이 달라서 좀 더 순수하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래서 영화를 보자 하니까 무서울 것 같다며 거부하고 -물론 루호와 함께 볼 수 있을 12세 관람가- 대신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마당에 풀장을 펴고 같이 놀 수 있었는데 이제는 준이도 크고 호호형제도 커서 이제는 도저히 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날씨도 너무 덥고 시원한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박물관이야말로 더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준이는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 했고 루호는 고려청자, 예호는 안내 로봇에 관심이 있었다. 예호가 약간 지루해할 즈음에 만화를 볼 수 있는 전시물이 있어서 다시 집중할 수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 측우기가 나오니까 또 재밌어 했다. 결국 저녁 먹을 시간까지 관람을 했는데 준이는 앞으로 몇일간의 일정이나 출국하는 일정 같은 시시콜콜한 것을 말해주며 내 대화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저녁을 준이에게 고르라고 하니까 옵션을 달라고 해서 점심에 햄버거를 먹었으니 그것만 빼고 고르라고 하자 쉑쉑버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돈까스는 어떠냐고 했더니 4일동안 돈까스를 먹었다고 해서 중국집, 피자 등등으 옵션을 말해줬지만 대답이 없었다. 준이는 좀 더 고민을 하더니 의외로 순두부찌개를 먹겠다고 했다. 맵지 않냐고 하니 순두부찌개는 안 매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관람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고심 끝에 순두부찌개를 먹을 수도 있고 다른 메뉴도 있는 곳을 찾아 갔는데 준이는 메뉴 사진을 보더니 치즈고구마돈까스를 시켰다. 4일동안 돈까스를 먹었다더니, 순두부찌개를 먹고 싶다더니 다시 돈까스라니 너무 웃겨서 루호를 쳐다보니 루호도 큭 하고 웃었다. 준이는 이렇게 엉둥한 매력이 있지만 또 여전히 동생들을 잘 챙겨주는 형아였다. 저녁 먹고 잠시 놀이터에 갔는데 예호와 잡기놀이를 해주며 놀아주느라 땀에 또 흠뻑 젖어버렸다. 사실 박물관에서는 여전히 서먹해 보였는데 저녁을 먹고 잠시 노는동안 다시 친해져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름마다 잠시 만나지만 그래도 한참동안 준이 형아를 찾았던 호호형제였는데 이제 너무 커서 친해지는데 시간이 든다. 남은 여름 준이도 바쁘겠지만 더 기억할 거리를 함께 만들고 돌아가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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