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호는 처음 하는 것을 아직 좀 두려워한다. 친한 친구 추천을 받아 태권도를 다니면 어떻냐고 하니 예호는 가기를 주저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좋고 예호랑도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왜 망설이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시범 수업을 한 번 가보기로 했는데 다녀온 뒤로는 집에서 태권도 동작도 연습하고 도복도 입어보며 열심이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를 맞아 방과후에 농구를 할 수 있게 되어 농구도 등록해주겠다고 하니 이번에도 예호는 망설였다. 그래서 또 한 번만 가보라고 했는데 역시나 한 번 다녀오더니 생각보다 괜찮았다며 방과 후 농구를 하게 되었다. 전에 하던 농구 레슨이 끝나 예호가 아쉬워했는데 같은 레슨비로 태권도와 농구 둘 다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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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영장

13[2023] 2023. 9. 20. 18:38

올여름 마지막으로 수영장에 갔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날 예호는 워터파크는 언제 가냐며 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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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지만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춤이라면 질색인데 그냥 춤도 아닌 발레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 -문득 초등학교 6학년때 댄스그룹을 결성했었던 사실이 기억나기는 했다.- 간혹 힘이 들어서 루호가 울 때도 있는데 이때다 싶어서 '힘들면 그만해도 돼.'라고 말해도 결국 고개를 젖는 것.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을 때도 있고 가족끼리 여행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데도 결국 발레가 좋다며 연습을 나가는 것 등등.

내가 루호의 나이 때 즈음에는 무얼 했나 생각해보면 의아함은 더욱 증폭된다. 비비탄 총을 쏘며 친구들과 놀고, 어른스러움이라고 해봤자 뉴키즈온더블럭 맴버 이름을 외우는 것 정도였던 것 같다. 목표라고 해 밨자 코 앞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 저절로 중학생이 되는 것 정도? 루호는 연습실에 가서 하루종일 연습을 하지만 나는 하루종일 농구하고 축구하며 놀았던 기억 뿐이다. 

루호는 올해 대여섯 번의 콩쿨을 나갔다. 선생님들도 열심히 해주셨고, 루호도 정말 열심히 했다. -가족들도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싶다.- 거의 대부분 기대 이상으로 좋은 상들을 탔고 선생님은 루호가 일을 쳤다며 기뻐하셨고 오래전에 루호를 봐주셨던 선생님은 기적 같다고 하셨다고 했다. 나도 물론 기분이 좋았지만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어떤 상을 타야 잘 한 것인지, 어떤 상을 타면 못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선생님이 기뻐하시니까 그런가보다 하며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생각할 수록 그 감정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성적은 루호와 선생님이 만든 것이니까 루호와 선생님의 상인 것이다. 나는 부모라는 이유로 공짜로 기쁨을 맛본다.

루호가 실력이 늘어 칭찬을 받고 상도 받을 수록 나는 점점 더 결과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한다. 콩쿨 연습장으로 루호를 들여보내며 문득 느껴지던 '내가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까" 했던 두려움, 주변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갑자기 느껴야했던 이질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다. 그냥 전처럼 뭣모르는 해맑은 바보 어른으로 남아서 도와주고 기뻐하고 싶다. 모든 공로도 루호와 선생님이 오롯이 받고 나는 그저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다. 사람들이 기적처럼 여길 하나님의 행보에 굳이 내가 깊이 관여해서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루호는 벌써부터 목표가 확실하고 내가 느끼기에는 비현실적이며 심지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로 걸림돌인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아빠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그렇다면 비현실적인 일도 간단히 현실이 되리라는 걸 믿는다. 이미 불가능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루호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참으로 놀랍다.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축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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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사역 여행

13[2023] 2023. 9. 14. 18:25

 

하품스튜디오에서 거제도로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다녀왔다. 정말 정말 아쉽게도 엄마와 루호는 가지 못하고 예호만 다녀오게 되었다. 루호에게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 이 여름이 특별히 기억될테고 예호는 사역을 통해서 또다른 경험으로 잊지 못할 여름이 되기를 소망하며 먼 길을 달려 가게 되었다. 

예호는 도착한 날 저녁부터 동갑내기 여자아이를 만나 친해졌고 그 아이의 아버지의 물회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으며 행복한 3박 4일을 시작했다. 오기 전에 사역을 간다는 다짐을 해서 그런지 교회 꾸미기를 할 때 스스로 풍선도 불며 돕는 모습이 대견했다. 늘 닌텐도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예호이지만 또래들과 함께 하는 동안은 하루종일 게임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을 만큼 즐거워 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들과 어울려 나무그늘에서 그네도 타고 얘기도 나누는 걸 보니 저렇게 지내지 못하는 서울에서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게디가 마지막 순서로 복음카드를 만들며 영접기도를 하는 순서에서 다른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잘 따라하지 못하는데 예호는 진지하게 영접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예호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갔던 이모, 미사 이모, 영욱이 삼촌 모두가 예호를 위해 모든 걸 맞춰주었고 그건 목사님 내외분도 마찬가지여서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예호의 말에 교회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삼겹살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무엇도 물놀이보다 예호에게 좋을 수 없었고, 사역이 끝난 뒤 내내 바다에서 놀며 열시간이 넘도록 해수욕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수영 실력도 많이 늘었다. 

예호는 아주 새카맣게 탔다. 서울로 돌아오자 새카맣게 탄 것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그 검게 변한 피부가 이번 여름 예호가 행복하게 지낸 표식처럼, 특히 지난 며칠 거제도를 다녀오며 얻은 특별한 시간들의 증표처럼 느껴져 흐뭇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와 단 둘이 다섯시간정도 차를 타고 오는데도 떼 쓰지 않고 잘 오는 모습을 보며 예호가 많이 성장했음을, 그리고 많이 성장할 것임을 느꼈다. 예호가 기도한 것처럼 다음에는 부디 가족 모두가 함께 다녀올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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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케치

13[2023] 2023. 9. 13. 18:15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가장 신나는 계절은 여름일 것이다. 나에게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가장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 중에 여유로운 여름 방학의 기분이며 휴가를 갔던 기억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신나는 여름을 보내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어 보았다. 아이들은 방학을 맞아 아빠가 출근하면 아침마다 엄마와 나가서 운동하고 들어와 시원하게 샤워하고 시원한 걸 먹는 루틴을 만들었다. 시간이 생기면 더 즐겁게 보내려고 분수를 가고, 수영장을 가고, 만화방도 가며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 시간을 쪼개며 놀기도 할일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바로 영어 수업을 받거나 수영장에 갔다가 엄마는 형을 데리러 먼저 나가기도 했다. 루호는 연습이 너무 많아 겨우 연습을 하루 빠지고 성경학교를 다녀왔고 코로나 때문에 유아기 이후 거의 처음으로 성경학교를 다녀와서는 성경학교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은 점점 깊어져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여름이 길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늘 아쉬울 것이다. 게다가 아홉 살(일곱 살), 열세 살(열한 살)의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열심히 여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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