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한글 쓰기가 가장 늦은 편인 예호가 한글 익히기에 한창이다. 
이제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어 유치원 알림장에 이름을 썼는데 '호'자의 ㅗ 모양이 ㅇ과 너무 떨어져 있어 아직 글씨 쓰기가 어눌하구나 하고 넘어갔다.나중에 예호를 데려다가 알림장에 이름 쓴 것을 칭찬하니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예호가 직접 이름을 썼구나!'
'네! 모자를 위로 높이 던진 호 자에요!' 하며 신나게 말하는 게 아닌가.
평소에 모자를 쓰고 나가면 항상 모자를 하늘로 던지며 놀았는데 이름에도 자기의 모습을 담아 쓰는 신기하고 재밌는 녀석이다.

스위치디자인 수업 때문에 최근에 그림도 많이 늘었는데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을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 외에 그림이라고 할만한 것을 그린 적이 없었다-
최근에는 그림이 많이 늘어 한글 쓰기를 하고는 그림을 그리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엄마의 긴 머리를 표현한 것과 형의 얼굴을 멋지게(?) 그린 것이 느낌 있다.  

 

또 한가지 느린 것이 밤중에 오줌 가리기인데 어느날은 자기 전에 기저귀를 입으라고 하자
'저는 언제 팬티 입고 자요?'
하기에 
'예호, 팬티 입고 자고 싶어? 그럼 오늘부터 팬티 입고 잘까?'
하지 짐짓 놀라고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네!'
하기에 
'그럼, 오늘부터 밤에 쉬야하지 않기다!'
하고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한밤중,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비몽사몽인 아이들 들쳐안고 나와서 쉬야를 시키고 있다. 하루 아주 조금 실수한 것 빼고는 계속해서 성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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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호는 지난 몇 주간의 한글쓰기를 (거의) 마치고 이모가 약속했던 어항을 선물 받았다.
그렇지만 얼마나 한글 쓰기를 싫어하는지 거의 고시공부하는 사람처럼 괴로워 하곤 했다.
때때로 ‘한글 쓰기는 꼭 해야 하는 거예요?’하고 묻기도 했다.
그렇게 글씨 쓰기를 싫어하던 녀석이 종이를 달라고 하더니 글자 연습을 한다.
나와 태권브이에 대한 얘기를 한참 나누고, 그림도 그린 뒤였다.
수십 개의 ‘V’를 그린 뒤 딱 한 개만 마음에 든다며 동그라미를 쳐 표시한다.
저정도의 열정이었다면 한글쓰기는 며칠이면 다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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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모습

11[2021] 2021. 3. 15. 14:20



스위치디자인 온라인 시간과 발레 수업시간이 겹쳐서 하지 못한 키트가 몇가지 쌓였다.
지혜와 주중에 미처 하지 못한 작업을 하려고 아이들에게 키트를 던저 주고 작업을 했다.
루호에게 예호를 좀 도와 주라고 했더니 징징거리며 안 할 거라던 예호도 꽤 집중해서 만들어 본다.

루호가 자기 옷에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 넣은 BTS 디자인을 보니 이제 10대라는 게 실감나고
예호가 내 옷에 그려 준 농구공은 왠지 모르게 감동적이다.
루호가 그동안 꽤 놀랄만한 미술 작품을 보여준 것에 비해 예호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일 자체가 적어서 또래에 비해 그리는 것이 늦은 편이었는데
스위치디자인 수업을 형과 따라하면서 그림 실력이 눈에 띠게 는 것 같다.
엄마의 옷에는 아기를 낳는 것, 형의 옷에는 식물, 자기의 옷에는 거미를 그려넣었다.
보모로서 좀 욕심을 부려보려고 눈에 눈동자를 그리면 더 좋을 거 같다고 하자 예호는 흰 색연필을 찾더니 눈 주위에 칠해준다.
눈이라고 생각했던 동그라미가 어쩌면 눈동자를 그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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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호가 처음 세상에 나온 날,
예호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고 부모일지라도 하루에 두 번 잠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작은 몸에 치렁치렁한 무언가를 잔뜩 달고 있는 아기를 향해 ‘바로 옆에 있으니까 걱정마. 아빠가 옆에 있을게’라고 속삭이고는 중환자실을 나서곤 했다.
그러나 규정상 엄마가 퇴원을 해야 하는 날짜가 되어도 예호는 중환자실을 나설 수 없었고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예호를 홀로 병원에 남겨두어야 했다.
지금도 종종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진다.

그러나 예호는 너무나 활동적인 일곱 살이 되었고 키도 또래 중에 큰 편에 속한다.
다른 모든 것들도 또래에 비해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이는데 단 한가지 걱정인 것은 아직도 밤에 기저귀를 차고 잔다는 것이다.
보통 분리불안을 겪는 아이들이 기저귀를 늦게 뗀다고 하는데 예호가 밤에 쉬야를 할 때마다 중환자실에서 지키지 못한 약속이 생각나곤 한다.
옆에 있는다고 했는데, 엄마 품에 안겨 있어야할 그 연약하고 외로운 시간들에 자기도 모르는 공포가 생긴건 아닌지...

오늘도 새벽에 예호는 슬그머니 엄마 아빠의 침대로 올라와 잠을 잤다.
혼나는 게 싫어서인지, 다시 제 침대로 데려다 눕히는 게 싫어서인지 발끝에 몰래 와서 눕는다.
그러면 나는 악몽을 꾸며 불편한 잠을 자거나 깨기도 한다.
지혜는 그런 예호가 딱해 위로 데리고 올라오고 그러면 예호는 특유의 ‘야옹야옹’ 애교를 부리며 씨익 웃는다.
엄마 아빠에게 와서 안심이 된 건지 오늘은 밤중에 쉬야를 하지 않았다.
예호는 칭찬도 받고 밤중에 쉬야를 하지 않으면 받는 스티커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목표로 했던 50밤이 거의 스티커로 다 찼다.
쉬야를 하지 않는 50밤이 지나면 이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버리고 싶다.
예호도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잘 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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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꼭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늘 바빠서 함께 운동을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건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었고 아주 어릴 적엔 작은 삼촌이 그런 역할을 대신 해주곤 하셨던 기억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조금 자라 드디어 야구장에 가게 되었을 때 야구의 규칙조차 잘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에 내가 오히려 당황했던 기억은 삼촌의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다행히 내 아버지만큼 바쁘지도 않고 공놀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자여서 루호에게 맞지도 않는 유니폼을 미리 사두고 같이 하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래서 루호가 아직은 몸에 비해 너무나 큰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를 하러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함께 패스를 주고 받으며 잔디 구장을 뛰는 부자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루호는 공차기는 한두 번 하고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은 스타킹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이상의 기대를 갖지 않게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이번에 루호와 다시 운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루호는 결이 너무나 다른 발레를 하고 있었고 대신 예호가 보통이 아이들처럼 공놀이를 좋아했기에 그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운동으로 농구를 추천해주신 선생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놀이터에 있던 농구골대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공대를 점령하고 있었고 나는 하는 수없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도록 하고 잠시 골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 게임을 하기에 한 명이 부족했던지 농구공과 함께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와 게임을 같이 뛰자고 했고 그렇게 짧은 한 게임을 뛰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몇달동안 농구를 하지 못했고 스트레칭 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구력’이 있기에 한 수 가르쳐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공 던지는 모습을 보고 내심 '저 정도면 내가 좀 꿀리지는 않겠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구를 오래 못하고 NBA만 보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과 비스한 착각인데 그 순간은 그걸 몰랐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금방 몇 점 내기 게임인지도 잊어버렸다. 마른 몸의 상대편은 내옆을 스쳐지나가고 나는 짧은 탄식을 내뿜을 뿐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힘을 쥐어짜내 쏜 점프슛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고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으세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말은 왜 그리 치욕적이던지. 


그 뒤로 일주일동안 루호와 농구를 하러 가고 있다. 형들이 오기 전 오전에 가서 처음으로 진짜 농구 골대에 공을 던져보고 있다. 처음이라 실력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여 즐겁다. 굳어 버린 내 몸을 조금 풀 수 있는 것도 즐겁다. 루호보다는 내 실력이 더 빨리 늘었으면 싶지만 여전히 발은 땅에 붙어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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