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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어요

11[2021] 2022. 2. 15. 16:15

눈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하늘은 찌뿌드드할 뿐이었고 그렇게 큰 눈이 올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댁에 가는 길에 아이들은 큰 눈을 기대하며 들떠 있었지만 아무래도 실망할 것 같아서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은데..'하고 말하자
루호는 역시나 기도를 시작하고 예호도 기도를 시키며 오히려 더 기대에 부풀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댁에 도착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창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눈발이 굵어져서 지금 내리는 눈이라도 맞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기도는 성취되었고, 기대는 만족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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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11[2021] 2022. 2. 15. 16:08

지은이모와 미사이모까지 드디어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와 공연연기등으로 미리 사두었던 티켓을 환불하는 우여곡절 끝에 더 싸게 다시 예약해서 기분 좋았고,
그냥 함께 와서 감사하고 그래서 더욱 아쉬웠는지 모르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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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가 핑크를 좋아하는 것이며 치마를 입어보는 것조차 나는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타고난 것 같아 기쁘게 여기기만 했다. 그래서 발레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그저 좋기만 했다. 
루호의 취향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정리되어 좋아하는 색은 민트로 바뀌었고 여전히 예쁜 것들을 좋아하고 종종 미적인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치마를 입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나 발레에 대한 사랑은 전혀 변하지 않고 오히려 깊어져 이제 너무도 명확하게 발레를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취향이 그러했듯 발레도 그러다 말겠지 싶었던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지만 이제 그런 건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루호는 이제 3-4년차 꼬마 발레리노이자 '전공반'이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6일은 발레홀에 가고 있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맞춰가는 일은 거의 없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발레홀로 뛰어간다.)

어느날 갑자기, 예술의 전당에서 ‘월드 발레 갈라쇼’의 화동을 하게 되었다면서 지혜와 루호는 엄청나게 흥분해서는 옷은 어떻게 하며 신발은 뭘 신고 하는 거냐며 부산을 떨었다. 코로나 때문에 화동을 취소하네 마네 하는 소식이 들려와 애간장을 태우며 난리를 피우기도 하고 덕분에 한 이틀정도 정신이 없었지만 결국 루호는 -비록 화동이지만- 그 어린 나이에 예술의 전당 무대와 대기실을 밟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발레 공연을, 그것도 세계적인 수준의 무용수들의 공연으로, 무려 예술의 전당에서 보게 된 것이다. 공짜로 얻은 티켓에 적힌 가격이 18만원. 갑자기 누가 볼까 걱정되기도 하고 괜히 혼란스러워진다. '아, 루호가 하는 것이 사치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면 좋겠는데...' 나는 필사적으로 발레의 아름다움을 보려 애를 써 보기로 했다. 18만원의 가치를 공감하기 위해서. 이내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 발레는 무엇인가? 반복된 정확한 동작, 손끝과 발끝까지 온힘을 집중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표준, 우아함으로 위장한 완벽한 절차의 수행. 나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에게서 마치 절대 고수가 만들어낸 동작을 재현해 내고 또 그 능력을 확인 받도록 짜여진 안무를 보았다. 그토록 정교한 동작을 마치 여유로운 듯 해내는 그리고 명료하게 확인시켜주는 그들의 몸짓. 그것들은 너무나 날카롭고 치열해서 차마 감동하지 못하고 감탄하게 된다. 감탄, 혹은 처음 깨닫게 된 놀라움으로 어질해진 사이 공연이 끝나고 화동이 등장할 차례였다. 사진을 찍으러 왔던 본분을 깨달으며 서둘러 촬영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나와 꽃을 전달하고 막이 닫히기까지 단지 수십초가 걸릴 뿐이었다. 찍은 사진은 겨우 열장 남짓. 그냥 꽃을 전달하는 것인 줄 알고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은 순간이라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이제 공연이 끝났으니 나름대로 발레는 무엇인가 정의해보려 애를 썼다.
이날 화동으로 참여하게 된 아이들은 발레트리니티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직 키가 크지 않은 루호를 늘 걱정했으면서도 오늘은 다행스러운 미묘한 기분이었다. 공연 이후 이어진 사인회에서 루호는 자신이 꽃을 건내준 발레리노에게 사인을 받았다. 루호는 저런 발레리노가 되기를 꿈꾸고 있겠지? 하지만 당장 루호는 가능성 조차 확인 받지 못한 어린 발레리노일 뿐이다. 아직 콩쿨을 나간 적도 없고 연습한 자기 작품이 없어서 연말 공연에서도 작은 역할만 담당할 뿐인 루호였다. 사실 나는 발레를 하는 것만해도 감사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또 연말 공연에서 루호가 속상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다. 루호가 작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내가 아빠라서 그런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 루호의 발레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가 고민하고 방향을 잡은 적이 없다. 사실 내가 결정하는 대부분을 이끌어 주시는대로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특히 발레는 진짜로 키 한번 잡지 않고 바람부는 대로 가는 배를 탄 것처럼 따라 왔다. 발레의 세계를 모르기에 배를 탈 수 있었던 건가 싶은 생각이, 망망대해로 들어갈 수록 느껴지기는 하지만 여정에서 만나는 일들이 놀랍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날 갑자기 선장 같은 주희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방향 이라는 것이 생기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선장이 시키는 대로 할 때 안심이 되는 것은 그가 데리고 가는 바다가 잠잠해서가 아니라 그가 배를 몰고 가는 목적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발레트리니티는 매해 공연을 한다.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에게도 발레트리니티의 아이들이 꾸는 꿈과 똑같이 꿈을 꾸도록 하는 자선공연이다. 매해가 특별했듯이 올해도 특별했는데 선천적 시각장애인 선지원님이 함께 공연을 하기에 더욱 그랬다. 너무도 당연하게 한 번도 발레를 본 적이 없는 선지원님은 발레의 동작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한 발로 서서 중심을 잡는 것초자 힘들어했다. 어릴적 발레공연을 옆에서 모든 동작을 엄마가 설명해 준 일 때문에 발레를 배우고 싶었던 그녀가 발레를 배우고자 했지만 7번의 거절을 받아야만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데리고 공연을 하겠다고 한 발레트리니티의 주희 선생님. 역시 선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되자 슬슬 바람이 불고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발레를 말로만 들어야 했던 시각장애인. 새를 본 적도 없는 그녀가 표현하는 한 마리 새라니, 생각만 해도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온라인 공연을 위한 영상과 사진을 촬영을 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동작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모든 연습이 막바지에 접어 들었고 모두가 초긴장 상태로 공연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공연을 이틀 앞둔 금요일 아침. 예호의 유치원에서 온 확진 발생 연락. 이번에 공연에 예호도 참가하기 때문에 발레트리니티에도 비상이 걸렸다. 결국 영생유치원에 다니는 예호와 지온이는 공연에서 빠지기로 했다. 속상하다며 엉엉 우는 예호를 겨우 달래고 불안한 마음으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다음날 들려온 소식. 선생님 한 분 확진으로 공연 전면 취소. 맥이 빠진다. 지금까지 들여온 돈이며 모든 노력이며 공연장 예약이며 모두가 한 순간에 날아간 것만 같다. 내가 이런 기분인데 선생님들은 어떨까? 공연을 기대해온 아이들은 어떨까? 인생에 한 번 뿐이었을 공연을 기다려오며 준비한 지원님의 마음은 어떨까? 선장님! 폭풍우입니다!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이 와중에 공연장에서는 환불은 절대 불가하다 하고 날짜 변경은 가능하지만 뒤이어 뮤지컬이 잡혀 있어서 무대가 설치된 그대로 공연을 해야 한다는 소식은 모두를 더 우울하게만 했다. 그런데 공연을 못하게 된 가운데 선지원님의 말이 또 가슴을 친다. '사실 저에게는 매번 연습이 공연과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난 무얼 불평하며 살고 있나? 이 사지 멀쩡한 인간이여. 다윗 왕이 아들을 잃고 그랬던 것처럼 이제 다음 기도를 할 차례임을 깨닫는다. 뭘 할까요 선장님.
격리가 해제되는 월요일로 공연이 확정되었다. 모두들 다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준비를 한다. 사진 촬영을 맡은 나는 아무도 없는 객석에서 리허설을 보고 있었다. 선지원님이 도착했다. 마침 조명을 맞추던 중이라 불이 꺼지고 어두워진다. 조명이 별 상관 없는 지원님은 안내견 새솔이와 함께 어두운 공연장에 들어선다. '지원씨 몸 풀게 준비 해주세요!' 화장을 하고 공연복을 입고 선지원님이 무대에 오른다. 소심스럽게 바를 잡고 수없이 연습했던 동작을 해 본다. 지원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한 번 취소된 탓에 공연은 원래의 계획보다도 초라하게 진행되었다. 최소한의 관객도 없고 지원님의 부모님도 모시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드디어 무대에 오른 선지원 발레리나의 표정엔 환희가 가득했다. 진정 발레란 무엇인가? 나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홀에서 하던 질문의 답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지원 발레리나의 표정 속에서 어떤 정의가 필요 없는 춤의 의미를 보았다. 그 공간에 가득한 사랑, 배려, 기쁨, 고통, 슬픔, 성취, 자신감, 희망, 그리고 마침내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를 보았다. 덕분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진짜 사진을 찍었다. 울음을 참느라 자주 카메라가 흔들렸다.
공연은 잘 마무리 되었다. 예호는 극적으로 다시 공연에 합류해서 즐겁게 공연했고 루호는 작은 역할이든 아니든 공연에 들떠 하루종일 신이나서 흥분해 있다가 자기 역할을 잘 수행했다. 역할이 적어 실망할까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나 루호는 작은 역할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고 긴장해서 몇 번이나 주의를 줘야했고 공연이 끝났을 땐 다른 누구보다 기뻐했다. 발레란 무엇인가? 루호 너를 신이 나고 흥분하게 하고 긴장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발레는 무엇이니?



후원에 힘입어 일하고 또 살아간다는 것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일도 때로 눈치를 보게 되는 조심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정도의 불편과 자기검열은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는 있겠지만 명품을 입는다거나 외제차를 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때때로 영예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우리가 자녀에게 발레를 시킨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발레는 전혀 내 의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루호는 지금까지 발레를 하고 발레리노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런 루호가 발레를 못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매달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 바로 다음달부터 루호가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몇년째 전공반으로 일주일 내내 수업을 받는 것이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니까 그 기적 같은 일이 끝나더라도 충격 받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를 악물고 해도 남들처럼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파도를 이기는 못하는 배 처럼.



감사하게도 이번달에도 루호는 발레를 하고 있다. 루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나의 꿈은 예중 가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새로운 선생님 수업도 잡혀서 따로 조금 멀리 특강 듣듯이 수업을 받기도 한다. 지난 달에는 루호가 성우 녹음을 해서 스스로 강습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운전을 해서 루호를 데려다 준다. 그냥 밤새 땅에 떨어져 있던 만나를 주워 담듯이, 루호를 연습실로 데리고 간다. 며칠전 루호와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너가 발레 하는 것 보다 더 먼저 구할 게 없어.’라고 했던 고백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데리고 간다. 발레에 대한 정의는 아직도 작성 중이지만 루호를 데려다 주는 동안 발레는 만나, 아니 진짜 와닿게 표현하자면 허기진 내 앞에 가득 채워진 공기밥 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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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

11[2021] 2021. 11. 19. 16:22

 

 

'호호형제'에서 업로드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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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인이 될 아이들과 함께 서울 누비기.
어디를 가도 이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것 같은 '핫 플레이스'들에 더욱 열심을 다해서 아이들과 여행하려 한다. 
우리 젊은 시절에 참으로 서울을 잘도 누렸구나 싶지만 또 무섭게도 변해서 낯설기도 하다. 
정말로 너무도 애틋한 도시다. 
루호는 구석구석 작은 곳들까지 누리며 주인공이 되어가고,
예호는 서울이든 아니든 게의치 않고 방방 뛰어다니며 놀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인데, 요즘들어 궁궐을 특히 좋아한다. 
숨고 뛰어내릴 곳이 많아서 그런듯?

여기서 엄마와 아빠는 무얼 했었는데 얘기를 해주다가 와 이런게 생겼네 하고 낯선 도시에 온 사람처럼 두리번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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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의 결심

11[2021] 2021. 11. 18. 17:22

추석 차례에 루호는 전과는 다른 경험을 했다. 할아버지가 불러 제사상에 올라가는 술을 따른 것이다. -이제까지 제사를 구경 하는 것이었다면 제사에 참여 한 것과 같이 된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것이기에 시키신 것이겠지만 루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또 루호의 증조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어 루호와 얘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때, 술 따랐을 때 어땠어?'
'음, 싫었어.'
예상대로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떼를 쓰거나 불만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또 왜냐고 물어보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오히려 먼저 루호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빠가 여전히 제사에 참여하는 건 선교하는 것과 같은 거야. 이슬람에 간 어떤 선교사는 완전히 이슬람 사람처럼 생활하기도 한대. 그것과 같은 거야. 하지만 너는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할래?'
질문에 루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을 더 달라고 해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제삿날이 다가와 다시 물었다. 
'술 따르는 거 어떻게 할래? 결정했어?'
루호는 여전히 고민이 된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그냥 할게.' 라고 대답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울컥하는 마음에 루호를 바라보지 못하고 창밖을 보았다. 
어차피 결론은 하든지 말든지 중에 하나였고 예상하지 못한 답도 아니었는데 그 단호한 목소리에 울컥하고 말았다. 
영적으로 둔감한 나에 비해 훨씬 민감한 -롯데월드 민속관에 다녀와서 잠을 못잘 정도로- 루호에게 쉽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대답하는 루호의 말에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느껴졌다. 

루호는 할아버지 옆에 불려가 앉아 술을 또 따랐다. 추석날과 같은 행동이지만 이제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할아버지는 절 할테니까 너는 기도하면 된다.'
이버지의 그 말속에 -그것은 일종의 배려이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떤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심이 느껴진다. 내가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전한 것이 없음이 그 말 한마디로 증명되고, 그로 인해서 루호가 내 책임을 대신 지어주고 있음이 무겁게 나를 누른다. 하지만 루호 덕분에 희망이 있음을 또한 느낀다. 그토록 바라던,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을 전할, 나보다 탁월하고 맑은 메신저가 아버지의 곁에 앉아 있다. 

* '예호야 제사에 참여 하지 않아도 할아버지 옆에서 시끄럽게 하고 까부는 건 예의가 아니야. 그럼 너는 어떻게 할래?' 라고 물었더니 자기는 할머니 방에 가 있는다고 하더니 막상 그 시간이 되자 쇼파에 달려가서 퍽 하고 처박히기 놀이를 하고 시끄럽다고 꾸중하니 주방에 가서 엄마, 할머니에게 앵기고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뭐 나름대로 너무 비장한 분위기가 풀어져서 좋았다면 좋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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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11[2021] 2021. 10. 11. 23:46

추석연휴에 야근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지난 몇주간을 얼마나 고되게 보냈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12시 전에는 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일 밤늦도록 일해야하는 강행군 속에도 추석 연휴가 제발 쉼표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는데 다행히 계획대로 어느정도 일을 마치고 연휴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렵게 얻은 것은 더욱 소중한 법, 어떻게 하면 재밌고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행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연휴였던 것 같다. 

때마침 너무도 맑은 하늘에 감사. (중국의 연료대란과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기업들의 과잉 충성으로 공해가 줄었다는데 그 덕분인지 요즘 하늘이 너무도 예쁘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아이들이 다 만나고 하룻밤씩 자며 행복하게 해드리고 아이들도 행복해서 감사. 좋은 곳 재미있는 곳 많이 가고 가는 곳마다 실패 없이 만족스러움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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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호의 생일파티

11[2021] 2021. 10. 5. 22:49

발레 선생님이 갑작스레 파티를 열어주신 덕분에 예호는 여러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루호에게는 이모 삼촌들이 늘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간들도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예호는 처음 경험하는 북적북적한 파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선물들과 축하를 받아 예호는 최고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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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랑 슈퍼 가자

11[2021] 2021. 10. 5. 22:39

최근 바빠진 덕에 사무실에서 밤까지 아이들과 함께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지은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군것질거리를 사주곤 한다. 
일이라면 무조건 첫번째라고 여기는 지은이에게 '나도 애들이랑 얼마나 놀고 싶은데.'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일이 첫번째라는 건 더 확실하게 알게 됐지만 더불어 조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게 된 것 같다. 
어린시절을 고모들과 같이 보내서 부족한 게 없던 나도 이모가 있었으면 했는데 지은이를 보면 그 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손에 간식 하자 쥐어주는 마음, 엄마 아빠 먹을 거리 하나씩 더 사서 들려 보내는 마음. 
그 마음을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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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압축

11[2021] 2021. 9. 24. 13:34

방학 진전 시작된 거리두기 4단계로 방학은 더 길고 답답한 듯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오지 않는 여름방학을 허투루 보낼 순 없었고 놀기도 공부도 열심을 다하는 방학을 보내기로 다짐했다. 

방학 특강으로 바인이네와 함께 한글, 영어, 농구 수업을 하며 방학 교실을 진행했다. 홈스쿨링을 직접 하시는 위인 한정은 선생님 덕분에, 또 아이들 모두 함께 한 덕분에 정말이지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알뜰하게 시간을 쓸 수 있었다. 목요일마다 잠시 아이들과 운동을 했었는데 샤워를 하고 함께 밥을 먹는 그 기분이 꽤나 좋았다. 

우리집의 여름 최대 장점은 마당에 수영장을 펼 수 있다는 점. 올해도 마당 수영장이 개장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가까운 곳 어디라도 가려고 애를 썼다. 오히려 사람이 없어서 더 좋을 때도 많았다. 

열심히 돌아다니니 참 좋은 곳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서울이다. 지난 번에 갑자기 시간이 나서 지혜와 한 번 가보고 다음에 아이들과 오리라 벼르다가 가 본 남산 산책로. 남산을 살짝 오르며 서울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좋았다. 루호는 운동도 하고 전망도 봐서 좋다고 올라 가고, 예호는 배가 고픈지 안 가겠다고 차로 도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별난 녀석.

지난 번에 갔었는데 마침 루호가 몸이 안좋았고 목적지였던 카페가 문을 닫아서 다시 가 본 아차산. 루호는 돌산을 오르며 전과 달리 산을 즐겼고 예호는 형을 졸졸 따라다녔다. 

바다에 가기엔 너무 멀고 여름 내내 어딜 가보지 못한 것 같아 계곡이라도 가보자 하고 찾고 찾아 간 곳. 식당과 카페와 계곡 모두가 있고 물이 맑고 아이들 놓기에 좋은 곳을 찾느라 애를 썼는데 가보니 (커피 빼고) 대만족! 가물어서 왠만한 계곡이 물이 없어서 놀기 좋지 않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너무 물이 좋고 조용한 곳이었다. 또 가고 싶은데 여름이 끝나가네. 

여름 방학에 가야지 하고 사 둔 전시 '파라오의 비밀'. 대부분의 이런 전시는 루호에게는 너무나 흥미롭고 예호에게는 여렵다. 예호는 전쟁기념과 밖에 놓인 비행기며 탱크 등등이 더 흥미로웠는데 이 마저도 정비중이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았는지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광복절 즈음해서 코로나 이슈로 지은이가 우리집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이모와 같이 보내는 며칠간의 꿈같은 선물이었을게다. 다행히 걱정했던 코로나 이슈도 해피엔딩. 만약 새드엔딩이었으면 정말 세드 했을 뻔. 

 

내 어릴적 여름방학의 몇몇 장면들은 아직도 여유롭고 행복하기만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들이 많이 쌓여가는 여름이면 좋겠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코로나가 밉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좋았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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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가 된 정루호

11[2021] 2021. 9. 24. 12:11

루호가 아미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미는 지난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것이고 맴버십카드를 이제야 받은 것이다. 맴버십과 별도로 카드와 굿즈를 받기 위해 꽤 큰 돈을 지불해야하고, 그마저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던, 참으로 여러모로 인내해야했던 과정이지만 어쨌든 카드가 도착한 것이다. 뉴키즈온더블럭이 유행하던 시절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틀어 놓고 생일 파티를 했었는데, 또 서태지와 아이들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는 (1위가 아니라 그냥 차트에) 헛소문에 들뜨던 시절이 있었는데 빌보드 1위 하는 한국 그룹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아미가 될 순 없겠지만 맴버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워보는 중이다.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면 같이 좋아하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꾸 할 말이 생길만큼 공통 관심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나도 그들이 좋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을 가입시켜 주고 야구장엘 데려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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