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에 루호는 전과는 다른 경험을 했다. 할아버지가 불러 제사상에 올라가는 술을 따른 것이다. -이제까지 제사를 구경 하는 것이었다면 제사에 참여 한 것과 같이 된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에게 손자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것이기에 시키신 것이겠지만 루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고 또 루호의 증조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어 루호와 얘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때, 술 따랐을 때 어땠어?'
'음, 싫었어.'
예상대로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가지고 떼를 쓰거나 불만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또 왜냐고 물어보는 스타일도 아니기에 오히려 먼저 루호에게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빠가 여전히 제사에 참여하는 건 선교하는 것과 같은 거야. 이슬람에 간 어떤 선교사는 완전히 이슬람 사람처럼 생활하기도 한대. 그것과 같은 거야. 하지만 너는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어떻게 할래?'
질문에 루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시간을 더 달라고 해서 며칠의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제삿날이 다가와 다시 물었다.
'술 따르는 거 어떻게 할래? 결정했어?'
루호는 여전히 고민이 된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그냥 할게.' 라고 대답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울컥하는 마음에 루호를 바라보지 못하고 창밖을 보았다.
어차피 결론은 하든지 말든지 중에 하나였고 예상하지 못한 답도 아니었는데 그 단호한 목소리에 울컥하고 말았다.
영적으로 둔감한 나에 비해 훨씬 민감한 -롯데월드 민속관에 다녀와서 잠을 못잘 정도로- 루호에게 쉽지 않은 일인데도 그렇게 대답하는 루호의 말에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느껴졌다.
루호는 할아버지 옆에 불려가 앉아 술을 또 따랐다. 추석날과 같은 행동이지만 이제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할아버지는 절 할테니까 너는 기도하면 된다.'
이버지의 그 말속에 -그것은 일종의 배려이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서 어떤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심이 느껴진다. 내가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전한 것이 없음이 그 말 한마디로 증명되고, 그로 인해서 루호가 내 책임을 대신 지어주고 있음이 무겁게 나를 누른다. 하지만 루호 덕분에 희망이 있음을 또한 느낀다. 그토록 바라던,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을 전할, 나보다 탁월하고 맑은 메신저가 아버지의 곁에 앉아 있다.
* '예호야 제사에 참여 하지 않아도 할아버지 옆에서 시끄럽게 하고 까부는 건 예의가 아니야. 그럼 너는 어떻게 할래?' 라고 물었더니 자기는 할머니 방에 가 있는다고 하더니 막상 그 시간이 되자 쇼파에 달려가서 퍽 하고 처박히기 놀이를 하고 시끄럽다고 꾸중하니 주방에 가서 엄마, 할머니에게 앵기고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뭐 나름대로 너무 비장한 분위기가 풀어져서 좋았다면 좋았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