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꼭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늘 바빠서 함께 운동을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건 좀처럼 하기 힘든 일이었고 아주 어릴 적엔 작은 삼촌이 그런 역할을 대신 해주곤 하셨던 기억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조금 자라 드디어 야구장에 가게 되었을 때 야구의 규칙조차 잘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에 내가 오히려 당황했던 기억은 삼촌의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다행히 내 아버지만큼 바쁘지도 않고 공놀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자여서 루호에게 맞지도 않는 유니폼을 미리 사두고 같이 하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래서 루호가 아직은 몸에 비해 너무나 큰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갖춰 입고 축구를 하러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함께 패스를 주고 받으며 잔디 구장을 뛰는 부자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루호는 공차기는 한두 번 하고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은 스타킹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이상의 기대를 갖지 않게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이번에 루호와 다시 운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루호는 결이 너무나 다른 발레를 하고 있었고 대신 예호가 보통이 아이들처럼 공놀이를 좋아했기에 그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운동으로 농구를 추천해주신 선생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놀이터에 있던 농구골대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공대를 점령하고 있었고 나는 하는 수없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도록 하고 잠시 골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마침 게임을 하기에 한 명이 부족했던지 농구공과 함께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와 게임을 같이 뛰자고 했고 그렇게 짧은 한 게임을 뛰게 된 것이다. 

 

코로나로 몇달동안 농구를 하지 못했고 스트레칭 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구력’이 있기에 한 수 가르쳐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의 공 던지는 모습을 보고 내심 '저 정도면 내가 좀 꿀리지는 않겠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구를 오래 못하고 NBA만 보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과 비스한 착각인데 그 순간은 그걸 몰랐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금방 몇 점 내기 게임인지도 잊어버렸다. 마른 몸의 상대편은 내옆을 스쳐지나가고 나는 짧은 탄식을 내뿜을 뿐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힘을 쥐어짜내 쏜 점프슛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고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괜찮으세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말은 왜 그리 치욕적이던지. 


그 뒤로 일주일동안 루호와 농구를 하러 가고 있다. 형들이 오기 전 오전에 가서 처음으로 진짜 농구 골대에 공을 던져보고 있다. 처음이라 실력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여 즐겁다. 굳어 버린 내 몸을 조금 풀 수 있는 것도 즐겁다. 루호보다는 내 실력이 더 빨리 늘었으면 싶지만 여전히 발은 땅에 붙어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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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유쾌하기

11[2021] 2021. 3. 8. 00:42

우울함이 찾아왔다. 아니 우울함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난생 처음이었다. 
집중할 수 없고, 잠이 깨지 않는 밤이 없을 정도가 되자 왜 우울증이 병인지 알 것 같았다. 
삶이 피폐해지는 것도 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호호형제를 보며 정신을 붙잡아 보기로 했다. 
절벽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려는 순간 나뭇가지를 잡은 것처럼.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인원 제한을 두는 곳들은 오히려 전보다 갈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천과학관, 서울과학관, 역사박물관 등등 예약제로만 입장 가능한 곳들에 마구 예약을 했다. 
짬이 있는 시간에는 다 예약을 하고 예약이 어려우면 평일에 예약을 해버리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최대한 행복해야겠다는 결심이었고
또, 열심히 행복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정말 좋아하고 많이도 돌아다녔던 서소문, 정동, 광화문, 경희궁과 성곡미술관 골목 근처에 가니
내 삶이 아빠가 되고 얼마나 바뀌었나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은 즐거워하고도 또 즐겁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방금 놀고 나와서 이제 뭐하냐, 내일 뭐하냐 묻는 예호를 보니
그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제 또, 내일 또 즐겁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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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기록

11[2021] 2021. 3. 8. 00:27

코로나 때문에 기족끼리만 모여서 명절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좋은 것들도 있는데 단촐한 명절이 그렇다. 
마침 지혜의 생일이 겹쳐서 새일 축하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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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도

11[2021] 2021. 3. 8. 00:20

높은 산은 아니지만 몇 걸음 걸어들어가면 그래도 세상에서 분리된 듯한 깊숙함이 느껴진다. 
기괴하리라 느껴지는 기도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처음 접하는 사람은 조금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 산기도다.
그런 산기도를 루호는 몇 번째 함게 하고 있다. 
그러다 지난 여름 엄마를 위해 기도하러 왔을 때 송충이에 놀란 뒤로 오지 않다가
또 기도할 꺼리을 주셔서 송충이가 없는 계절임을 확인하고 다시 따라나섰다. 

나는 산기도를 좋아한다.
기도원이라는 이름으로 기도를 쥐어 짜주거나 미혹시키는 체험을 보여주는 곳들보다는
조용히 방해 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어서 좋고, 골방처럼 답답하지 않아서도 좋다. 

각자 한 시간의 기도시간을 주고 다시 모이기로 해서 나는 산 꼭데기까지 올라갔다가 시간에 맞춰 내려왔다.
루호는 기도를 잘 했을가 혹시 지루하지나 않았나 싶어서 슬쩍 옆으로 가서 서 있으니 
'아빠 언제 왔어?' 한다.
'다 했어? 다 했으면 가자.' 하니
'아니 아직.' 이라며 기도를 계속한다.
지루해 할가봐 갔는데 방해만 한 꼴이 되었다. 

나는 잠재의식 속에 기도에 대한 유년기의 체험이 없어서 기도가 주로 힘겹게 느껴진다.
어릴적부터 기도에 대한 수많은 체험을 해 온 루호는 과연 어떤 기도를 할까?
많은 것들이 아빠를 앞지를 것이지만 기도는 이미 앞지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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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갈 때만 해도 마른 날씨였는데
저녁을 먹고 나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고
얼마나 많은 눈이 갑작스레 내렸는지 벌써 몇센티미터나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눈다운 눈이 온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눈은 꽤나 충분해서 잠시나마 마음껏 눈을 즐겼다. (사실은 요즘은 감기만 걸려도 큰 일이기에 적당히 몸을 사렸지만)
그런데 눈이 오면 보통 날씨가 따뜻해지는데 신기하게도 영하10도 이하의 강한 추위가 이어져서 며칠동안 눈을 두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반갑기만 한 이런 낭만과는 별개로 추운날씨에 폭설은 길을 마비시켰고
눈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짧은 길이 위험천만했고 반대 차선은 차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미처 눈이 녹기도 전에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지간히 폭설이어서 몇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눈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눈이 워낙 대단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물론 아이들은 또 한 번 눈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 이렇게 제대로 눈을 즐긴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큰 눈은 길에서 고생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두 번의 큰 눈이 내리고 난 뒤에 전보다 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잔뜩 긴장하고 또 눈이 내리면 출근도 하지 말고 아이들과 눈놀이를 해야지 했는데 눈은 조금 오다 말았고 그나마 따뜻한 날씨고 날이 밝자 다 녹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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