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12[2022] 2023. 1. 2. 12:13

우리가 살던 집은 나보다도 나이가 많았지만 불만이 있기는 커녕 감사함으로 가득찬 집이었다. 그래서 집의 이름도 마레(충만)하우스라고 짓고 살았다. 루호가 아주 어렸을 적, 예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사를 와서 벌써 8년을 살았다. 호호형제에게는 아마도 '우리집'이란 곧 8년동안 살았던 이 집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집에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사를 하게 된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할 것이다. 생각보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지만 어차피 곧 떠나야만 했을 집이라는 건 분명했다. 이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추억이 다 담겨있는 집을 떠나야 한다는 건 아이들에겐 어쩌면 청천벽력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처음 집을 보았을 때 집앞 길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싱그러웠고, 흔하지 않은 다락방은 아이들의 자랑이 되었으며, 신경쓰지 않고 마구 뛰어놀아도 되는 것이 두 남자 아이들에게 더 없이 좋았다. 좁은 마당이지만 인조잔디를 깔고 여름이면 튜브에 바람을 넣어 수양장을 펼쳐 준 것도 아이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락방은 아이들이 올라가기에도 좁고, 작은 수영장을 펼치고 놀기에도 아이들은 너무 커버렸다. 

집을 비우고서야 정말로 이렇게 낡은 집이었나 싶다. 그동안 포근하고 든든했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고 앙상하고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잘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창문 틈새로는 겨울바람이 들이닥칠 것이고, 타일이 다 깨져버린 화장실은 곰팡이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집이다. 정말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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