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행 1

12[2022] 2022. 7. 19. 11:56

 

 

지혜의 수술과 입퇴원 일정, 퇴원 후에 잡힌 또 다른 검사들의 날짜를 잡으면서도 예약해 둔 이른 휴가를 염두해 두고 있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위약금을 각오하면서도 예약들을 취소하지 않았던 건 간절함 때문이었다. 지혜의 체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행은 취소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했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호기롭게 차를 렌트했다. 다행이 40% 할인을 받았어도 숙박보다도 더 많은 돈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달까? 익숙하지 않은 큰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하필이면 엄청난 폭우 . 몇미터 앞을 보기도 힘들었고 고속도로지만 모든 차들이 비상깜빡이를 켜고 서행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비가 너무 심하니 쉬었다 가자고 하셨지만 휴게소는 이미 한 번 다녀왔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천천히 계속 달렸다. 그런데 산맥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가자 거짓말처럼 해나 나왔다. 첫번째 목적지 강릉에 도착해 내렸을 땐 완벽한 날씨가 되어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신기한 일이었지만 지난번 부모님과 휴가 때에도 태풍 중에 휴가 기간 동안 좋은 날씨를 주셨던 터라 가족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그럼 그렇지'하는 분위기였다. 

비가 올까봐 선택한 아르떼뮤지엄은 너무 루호 스타일인가 싶었지만 의외로 뛰어다니며 즐긴 예호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줄서서 찍는 포토 스팟에서 루호가 포즈를 잡자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니 인싸는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고 예호는 신기한 미로에라도 들어온 듯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 아버지도 이런 전시가 흥미로우신 듯 재밌게 둘러보신듯 했다. 눈으로 보는 것 말고도 음악이며 향기까지 기획한 센스가 놀라웠다. 더 여유롭게 한참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내 강릉 바다에 가자 루호는 파도 소리를 녹음하며 눈으로 풍경을 보고 춤을 추었고 예호는 강아지처럼 날뛰었다. 물론 조금 추워 옷을 적시지 말라고 했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옷을 적셔버린 예호였다. 바다를 보자 그래도 여행을 떠나온 실감이 났고 비를 뚫고 온 보람이 느껴졌다.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마침 할아버지 생신이라 함께 생일 축하하며 간식을 먹었는데 방금 저녁을 먹고 온 애들은 마치 밥때라도 된 듯 먹어치웠다. 그리곤 골아 떯어졌다. 
아침이 되어 거실로 나가보니 아이들은 창문에 머리를 박고 수영장이 언제 열리나 바라보고 있었다. 오픈 시간인 아홉시가 되기 전부터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지칠 때까지 수영을 했고 이후로 밤타임, 다음날 아침타임까지 여섯시간이 넘게 수영을 했다. 역시 아이들은 수영이 최고다.  

수영을 쉬고 칠성조선소에 갔다. 얼마전까지 배를 만들던 곳을 카페로 개조한 곳이었다. 예호는 계속해서 '배는 어딨어요?'라고 물었다. 배를 만들던 곳이라고 해서 큰 배를 포함한 이런저런 배를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나마 남겨져 있던 배를 만들던 기계들을 보고 돌릴 수 있는 건 다 돌려보고 눌러지는 건 다 눌러봤다. 바다와 호수를 보며 쉬는 시간은 행복했다. 그리고 해수욕장에도 가려고 했으나 햇살이 너무 강해서 포기. 다음 목적지였던 시장으로 향했다. 회는 전혀 볼 생각이 없었는데 예호가 물고기며 킹크랩을 보고 싶다고 들어가니까 나머지 식구들이 다 따라 한 바퀴를 돌았다. 지혜는 술빵을, 루호는 떡갈비를 골라서 둘 다 시장에선 인기 상품이라 줄을 서서 샀다. 

마지막 일정은 설악산이었다. 어릴적, 그러니까 이상은이 담다디로 강변가요제 대상을 타던 해의 여름이었다. 그 여름에 설악산으로 가족여행을 갔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해서 너무나 울창하고 깨끗한 숲에 엄청나게 거대한 거미줄과 거기 맺힌 이슬까지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곱씹으며 행복해하는 나처럼 아이들도 그런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
급한 마음에 점심도 미루면서 달려왔는데 주차장이 만원이라 차들이 잔뜩 밀려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려 했는데 못 탈까봐 조바심이 났다.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케이블카를 예약하러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는 동안 땀이 났다. 그만큼 맑고 더운 여름날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풍경을 보기에 참 좋은 날씨였다. 다행히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예호가 궁금해하던 벌집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예호는 벌집 속에서 벌이 나오면 어떡하냐며 입에 대지도 않았다. 간식을 먹고 나서 케이블카를 타고 산 봉우리에 올랐다. 조금 더 올라가면 권금성이라는 봉우리에 올라갈 수 있었고 어린이도 갈 수 있을 정도의 잠시의 산행이었지만 땀이 비오듯 했다. 그러나 정상에서 보는 광경은 몇분의 노력을 들이기엔 충분한 것 같았다. 다만 너무 덥고 해를 피할 수도 없고 돌 절벽이라 꽤나 위험한 곳이라 다른 식구들은 모두 내려갔지만 루호는 좀 더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고 둘이서 결국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나에게 없는 용기와 도전정신을 종종 루호에게서 발견하고 그래서 그럴 때마다 대견하다. 덕분에 여러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더 절벽쪽으로 내몰았다면 더 드라마틱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해 보였다. 아직 체력이 완전하지 않아 지쳐버린 지혜에게 전화가 왔고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좀처럼 차에서 자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피곤했는지 차에서 잠이 들었다.

좋았던 여행의 아쉬움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다른 여행을 기대하는 마음 뿐이겠지. 장마 중이지만 그냥 여행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만했는데 거짓말 같은 멋진 날씨 속에서 짧은 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수영장이든 산이든 시장이든 뭐든 어릴적에 거기 여행을 다녀왔었다고 호호형제에게 꺼낼 기억이 되었기를. 힘들었던 일들로 가려지지 않을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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